인류 역사상 브랜드가 되었던 인간들이 지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이 그러
한 생생한 몸짓들과 진정성과 창조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그들도 결국은 그 시대의 산물
이었고 그 시대의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 한계 속에서 몸부림치며 자기만의 해법을 토해 내었
다. 그 해법은 곧 다음 시대의 유행이 되고 브랜드가 된다. 적응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도 그 당대에
는 살아남지 못했던 경우가 많다. 아니, 살아남지 못했을 뿐 아니라 철저하게 폐인처럼 부적응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그 시대의 관점에서 그들은 건강하지 않았고
병자였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브랜드뿐 아니라, 지금 바로 우리들 곁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해 보이는 모습 속에서도 그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조차 그러
한 몸짓이 꿈틀대는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정신에도 병이 들 수 있고, 병은 치료해야 한다면, 치
료의 목표는 바로 그러한 몸짓들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자극해 주는 과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남’이 아닌 ‘나’의 욕구에 충실한 브랜드
가식도 오래 하다 보면 진실이 된다. 습관은 제 2의 천성이기 때문에. 진실도 진실임을 계속 의식
하고 고수하다 보면 가식적이 된다. 진실은 굳이 주장하거나 꾸밀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무엇이 진
실이고 무엇이 가식인가? 사실 이런 것을 따지는 것은 그래서 무의미하다. 가식과 진실 사이에 선
악을 나누는 것도 별로 영양가가 없다. 사실은 ‘날 것’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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