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윈(문학의숲) 대표 고세규
400여 권의 책이 내 손을 거쳐 갔지만, 케이 선생과 만든 이 한 권의
책, 10여 개월은 내게 새로운 시간이었다. 저마다의 책을 진정한 명
품, 베스트 브랜드로 런칭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새로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케이 선생(실명이 아니다. 실명을 쓰지 않는 건 이 글이 작가 고유의 이미지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칠까 조심스
러워서다)은 유명한 시인이다. 한국 최고의 번역가고, 공식 비공식 모두 한국 출판사상 가장 많은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작가다. 재작년 가을, 형을 따라 갔다가 그분을 뵐 일이 있었는데, 우리 회사에서 펴낸 《마크 트웨
인 자서전》을 비롯해 서너 권의 책을 선물했다. 케이 선생은 형의 대학 동문 선배였는데, 모교 교수의 잘 팔리지
않을 법한 딱딱한 문학평론집 만드는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 동석한 것이었다.
대문에 들어서니 케이 선생은 마당의 다년생 화초들을 한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집이 너무 낡아서 전면 보수를
해야 하는데, 공사를 위한 작업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10월 경이었는데, 마당 탁자에 앉아 툭툭
지는 낙엽을 보며 꽤 오랜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난 지 한 달쯤 뒤에 케이 선생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다시 찾은 선생의 집은 막 공사를 시작했는
데, 보수 정도로는 안 되고 일부분은 너무 낡아 붕괴 위험까지 있어서 아예 다시 지어야 한다고 했다. 마당에는
몇몇 건축자재가 쌓여 있었고, 집은 언제든 헐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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