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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 지면p.82–84

고 있어.

전교생 17명, 월평균 출석일 3일인 폐교 직전인 학교에 소사로 들어가서 문장 공부를 했어요. 그때가 가장

치열했던 시기였습니다. 밥을 해서 그냥 놔두면 꽁꽁 업니다. 그 밥을 못으로 깨 먹으면서 글을 쓰곤 했었

는데,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문자 그대로, 그야말로 짐승의 쓸개를 먹으면서 각오를 다지듯이 맨몸으로 그

장작더미에 누워서 덜덜 떨며 이를 갈고, 언 밥 해먹으면서⋯. 늘 방문 열고, 불 안 때고 추우니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무들만 봤어요. 그 겨울에 저놈들은 어떻게 견디나 하고, 꿋꿋하게 비명 한번 안 지르고, 딱

마주 앉아서 내다보고 있으면서 합일감合一感이라는 것을 터득했죠. 남들이 다 설명하는 서술적 문체를 쓰던

시대에 내가 묘사적 문체를 창안해서 그것으로 데뷔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문체를 쓰고 있죠. 그 차

별화가 결국 나를 만들어 준 것이죠. 그래서 지금도 나는 좋은 문장을 얻으려면 ‘사물들을 애정 어린 시각

으로 바라보고, 그것들과 합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좋은 문장들을 얻을 수가 없다’라고 이

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해서 1975년도에 등단을 하시게 된 것인가요?

72년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가 됐었고, 지역지가 아니라 중앙지가 돼야 대한민국의 작가가 되는

데, 그 당시에 <세대世代> 신인 문학상이라고 문학하는 모든 사람들이 탐내는 공모전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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