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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 · 지면p.282–283

가치 사치

시장이 호황일 때는 사는 사람, 파는 사람 모두 인심이 후하다.

기업들은 고객들의 불만사항에 후한 보상을 하기도 하고 과감한

혁신도 시도한다. 소비자들도 새로운 제품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

진다. 하지만 불황이 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소비는 급격히

줄고 기업들은 과거를 답습하며 몸을 움츠린다. 뉴스에서 연일 소

개되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가 이를 증폭시킨다. 이때 꼭 등장하는

단어가 ‘합리적인 소비’다.

그러나 경기가 얼어붙었다고 정말 소비자들이 합리적 소비를 할

까? 실상 합리적인 소비의 진실은 우리 생각과는 사뭇 다르다. 물

론 가격에 민감해지긴 하나 소비 스타일 자체가 바뀌는 일은 좀처

럼 드물다. 다만 구매 횟수를 줄이거나 그간 이용해 온 브랜드 중

‘그저 그런 브랜드’의 대체제를 찾을 뿐이다.

고객은 (필요가 아닌 욕망에 의한 소비가 분명 하나라도 있을 것

이기에) 여전히 사치스럽고 그래서 소비에 대한 죄책감을 상쇄할

‘의미 부여 작업’이 더 빈번히 일어난다. 원래 소비 자체는 비합리

인 경우가 더 많다(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소비를 반례로 들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원시인들도 목숨은 부지하지 않았던가). 소비의

근원인 욕망은 합리성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잠시 숨어 있거나 다

른 형태로 전이되어서 결국 소비를 부추기고야 만다.

이때 일어나는 해괴한 심리가 바로 ‘가치 사치’다. 언뜻 보아도

모순적인 단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가치 사치란 분명 ‘사치’이긴

하나 사치에 우선순위를 매긴 뒤 (나름) ‘가치’를 따져 구매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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