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안肉眼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 이것이 플라톤
이 내린 ‘이데아’에 대한 (매우 짤막하게 줄인) 정의다.
각종 상징적 이미지가 응축된 브랜드들이 전시된 쇼윈도를 응시
하는 소비자가 (육안으로) 보는 것은 제품이 아니라 실제로 (심안
으로) 보는 것은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만족을 느끼는 미래 자신
의 모습, 즉 이데아다.
이데아가 소비자를 자극하는 것은 이것을 소비(?)하면서 느끼
는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
는 카타르시스는 ‘정화’ 혹은 ‘마음의 배설’을 뜻한다. 영화나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체험하는 고도의 감정적 희열을 대변하는
이 단어는 현대 사회에서 ‘소비’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영
화, 책, 음악 또한 소비의 대상이며 이것에서 자신의 이데아를 취
할 수 있는 (가장 1차적이지만 가장 빠른) 방법이 바로 ‘소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소비자의 이데아를 그려 내는 제품과 서비스
를 제안해 그들로 하여금 소비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하라’
는 명제를 저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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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을 명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소비를 통해 얻는 카타르
시스는 몰라도 ‘소비자가 그리는 이데아’는 변한다는 점이다. 심안
으로 보는 것이 단지 (미적인) 아름다움은 아니다. 점점 올바른 가
치나 신념에 관한 것으로 확대,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들의
브랜딩 방향은 가치와 신념을 중심으로 하는 이데아를 그려 내는
것’이란 제안은 그래서,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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