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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 · 지면p.20–21

만년설을 본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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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원래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다. 하지만 컴퓨

터 이후에 우리에게는 필체가 사라졌다. 40살이 넘으면 인

생의 깊이를 볼 수 있는 글씨체를 가지는데 20년 동안 자판

만 두드렸던 나의 글씨는 우리 딸처럼 쓰고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글자마다 모양이 다르다. 원래 실력 있는 무인은

칼을 자랑하지 않고 진정한 문인은 붓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옛 높으신 분들의 가르침도 있었지만 몽블랑을 굳이 구매하

고 자랑하는 것은 어느 밥집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한 상 거하게 먹고 결제 용지에 사인을 하려고 하는데 점장

은 사인을 위해서 내게 몽블랑 만년필을 건네 주었다.

송아지 가죽 판넬에 놓인 영수증에 얄타 회담과 이번 정상

회담에나 쓰일 만한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 되는 몽블랑 만

년필로 쓰는 사인은 예전에 사용하던 빅볼이 주는 그런 느

낌이 아니었다. 약간 굳어 있어서 처음에는 종이를 긁었지

만 곧 다크블루의 강한 잉크가 14k 판촉을 따라서 흘러나왔

고 굵게 타고 내려오는 잉크는 사인을 그림으로 만들었다.

음식을 대접한 사람과 음식을 만든 사람의 마지막 품격의

디저트라고 할 수 있었다. 자칫 비싼 음식값으로 인해서 후

회가 될 수도 있었지만 사인을 하는 동안 잔치를 베푼 백작

이 되는 기분이 되었다. 그 이후 당장 몽블랑을 샀다. 개인

적 구매 이유는 간혹 책에다가 사인을 해줄 때가 있기 때문

이다. 유성펜과 빅볼로 사인을 할 때는 말 그대로 사인이 아

니라 이름을 날려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몽블랑으로 사인

을 할 때는 ‘그린다’ 라고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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